조이스가 단편모음집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의 집필을 끝마쳤을 때, 그에게는 자신이 더블린을 마비의 중심지라 규정한 다음, 아일랜드의 전일적 타락상을 해부학적 사실성으로 그려낸 나머지, 더블린의 매력과 장점을 소홀히 취급했다는 조용한 자기반성이 일었다. 집필시기로 볼 때 가장 나중에 완성되어 단편모음집의 맨 끝에 덧붙여진 "사자들("The Dead")은 조이스의 자가로서의 이러한 반성을 근거로 창작되었기에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다른 작품들과 그 주제와 서술기법에 있어서 차별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차별성은 "사자들"("The Dead")에서 아일랜드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의 토운을 약간 누그러뜨리는 대신, 회복과 치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조이스의 태도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또한, "사자들"("The Dead")에서는 이전의 작품들처럼 서너 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단일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와는 달리, 이전의 14편의 작품에서 다루었던 모든 주제와 토픽을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총정리하려는 의도가 있었기에, 등장인물의 숫자증가는 물론이고 작품의 의미구조 또한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게이브리얼(Gabriel)은 이전 단편들의 평면적인 주인공들과는 달리,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점검해볼 수 있는 계기를 부여받으면서, 도덕적 심리적 정신적 발전을 작품의 내부에서 일정 정도 성취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게이브리얼의 정확한 자아인식과 확고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내면여정은 크리스마스 파티동안 세 명의 여성 인물들과의 ---·릴리(Lily), 미스 아이버즈(Ivors) 그리고 그레타(Gretta) --- 조우와 동궤를 그리는데, 그의 편협하고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성적인 영역 등에서 날카로운 도전을 받게되고, 그는 잇단 분노와 충격 그리고 당혹감에 직면하면서 일종의 심리적인 죽음의 과정을 겪게 된다. 게이브리얼 개인을 향해 비자발적이면서 동시에 우연적으로 가해지는 파상적인 공격은 또한, 계급의 문제,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 경제, 역사, 종교의 갈등, 성차별의 문제, 부부관계의 문제 등의 굵직한 이슈와 맞물리면서 이 작품의 주제를 좀더 큰 맥락으로 끌어올리고, 이전의 단편들과의 유기적 상호연결성을 확보한다. 끝으로, 작품의 마지막에서 잠들기전 게이브리얼이 경험하게 되는 유령의 비전은, 그날 저녁 안팎으로부터의 끓임 없는 공격에 시달려온 그가 지식인의 허위의식, 자기중심성, 자만심 등을 버리면서, 자아해체 또는 자아해방의 과정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존재로의 진정한 부활은 죽음의 과정이 선행되어야함을 보여준다. 또한 유령의 비전은, 현재와 과거의 모든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암시하고, 영혼들의 우주적 융합의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작품의 스케일은 대담한 시공간적 자기확장을 성취한다. 게이브리얼이라는 한 개인의 문제를,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물질세계와 초월적 세계라는 대립 항을 넘나들면서 천착한 "사자들" ("The Dead")은 개별적인 중편작품으로서의 완성도도 손색이 없거니와, 마비와 타락의 함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더블린 사람들』전체에 대한 긍정적이고 치유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