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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오역된 제목
작성자 서옥식 등록일 2013-12-16
조회수 9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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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오역된 제목

율리시스(Ulysses)와 함께 아일랜드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의 불후의 명작에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이란 것이 있다. 국내에서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란 이름으로 10여개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하지만 여기서  ‘Artist’는 ‘예술가’가 아니라 ‘인문학도’(의역해서 작가)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Ulysses’와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은 조이스 문학의 쌍벽이다. 미국의 모던 라이브러리(Modern Library)가 1998년 선정한 20세기 영미소설 100선에 각각 1, 3위로 뽑힐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 영국 서식스대(University of Sussex) 영어학 교수인 피터 박스올(Peter Boxall)이 2007년에 쓴 ‘죽기 전에 읽어야 할 1001권의 책’(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에 포함돼 있으며 2008년 미국 하버드 서점(Harvard Book Store)이 뽑은 ‘잘 팔리는 책 20’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03년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고전 100선’, 2005년 ‘서울대 권장 도서 100선’에 들어갈 정도로 고교생 이상 필독서로 선정된 바 있어 어지간한 사람이면 이 소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소설은 ‘스티븐 디달러스’(Stephen Dedalus)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내세워 조이스 자신의 젊은 시절의 경험을 특별한 문체와 문제의식으로 투영시킨 ‘매우 자서전적 성장소설’(a heavily autobiographical coming-of-age novel)이다. 디덜라스는 조이스 자신의 분신이다. 더블린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날로 피폐해지는 가정을 배경으로 유년기에서 대학을 졸업하기 까지의 성장기(成長記)이다. 주인공이 유년 시절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한 사람의 작가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근거리에서 추적한 이 작품은, 작가가 되기 위해 가족, 사회, 종교, 조국과 민족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거부해야 했던 주인공의 고독과 방황 그리고 결단을 조이스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오랜 식민지로 정치적 독립을 열망하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아주 궁핍했고(유길준의 서유견문을 보더라도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나와 있다), 종교적으로는 엄격한 가톨릭 국가였다. 주인공은 조국의 역사와 현실앞에 ‘artist’의 꿈을 실현하기위해서는 쇠락하는 조국과 가정, 종교라는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일랜드를 떠난다. 그에게 있어 조국은 하나의 구속(costraint)이자 올가미(trap)로 간주된다. 소설 초반부에서 디달러스는 지리교과서에 “Stephen Dedalus/ Class of Elements/ Clongowes Wood College/ Sallins/ County Kildare/ Ireland/ Europe/ The World/ The Universe” 즉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소속된 세계를 점점 넓은 곳으로 적어 놓는다. 이것은 그의 사고가 좁은 현실 세계에서 좀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는 것을 보여주며, 결국 그가 곧 자신의 세계를 떠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소설은 “옛날 옛적 매우 좋았던 시절에”(Once upon a time and a very good time)로 시작하여 더블린을 떠나 유럽대륙으로 가는 주인공이 마지막 대목에서 “삶이여 오라! 나는 아직은 창조되지 않은 민족의 양심을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벼리어 내리라”(Welcome, O life, I go ........... to forge in the smithy of my soul the uncreated conscience of my race.)고 비장한 선언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스티븐’은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최초의 순교자 이름이고 ‘디달러스’는 손수 날개를 만들어 달고 하늘로 날아올라 역경을 탈출한 그리스 신화 속의 발명가(inventor)이자 건축가(architect)이다. 스티븐 디달러스는 조이스가 한때 사용했던 필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과 본문에 나오는 ‘artist’를 ‘예술가’로 번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역시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art’라는 단어를 ‘예술’로 번역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소설에선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가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소설에서 음악이나 미술, 조각, 영화 등 예술과는 관계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국어사전들을 봐도 예술가란 일반적으로 예술창조에 종사하는 사람, 즉 화가, 조각가, 건축가, 음악가(연주가), 무용가, 무대배우, 연출가 등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나와 있다(작가나 문인, 언어학자를 예술가로 부른다면 모르지만). 혹자는 디달러스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탁월한 장인(匠人)이기 때문에 ‘예술가’가 맞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작가는 미노스왕이 크레타섬의 미로(迷路)에 디달러스를 가두었을 때 그가 천재적인 솜씨를 발휘해 손수 날개를 만들어 몸에 달고 하늘로 날아올라 탈출한 것을 주인공의 아일랜드 탈출(escape)과 병행시키기 위해 사용한 이름이다. 또한 스티븐이란 이름은 ‘art’를 위해 순교하겠다는 주인공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조이스 자신은 작가이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예술가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는 대학시절 여러 나라 언어를 전공했고 소설가, 시인, 극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여섯살인 1888년 예수회(Jesuit)에서 운영하는 ‘Clongowes Wood College’라는 기숙학교에 입학한 후 또 다른 2개 기숙학교(Christian Brothers O\\\'Connell School과 Belvedere College)를 전전하다 1898년 아일랜드 최고의 명문이자 국제대학인 ‘University College Dublin’(UCD)에 들어갔다. 대학에선 문과대(College of Arts & Celtic Studies)에서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뒤 1902년 현대 언어들(modern languages)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로 문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요약하면 그의 전공은 어문학 또는 인문학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이스는 물론이고 소설 주인공의 정체성은 예술가가 아닌 작가, 넓은 의미에서 인문학도이다. 따라서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은 ‘(어느)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아니라 ‘어느 젊은 인문학도의 초상’ 또는 ‘인문학도였던 내 젊은 시절의 이야기’ 정도가 이 소설에 들어맞는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의역하면 ‘어느 젊은 작가의 초상’이 된다. 인터넷에 들어가 영어로 된 한 서평을 보니 “이 책은 주인공 스티븐이 작가로서의 삶을 추구하기위해 아일랜드를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The book ends with Stephen leaving Ireland to pursue the life of a writer.)로 돼 있다.

주인공 디달러스는 소설에서 실제 조이스가 다녔던 학교들과 대학을 다닌 것으로 묘사되며 특히 Belvedere College 재학시절에는 문학에 대한 열정과 함께 작문(writing)성적이 뛰어나 수필쓰기대회(essay contest)에서 최우수상까지 받는 등 어문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조이스는 노르웨이어를 독학해 입센(Henrik Ibsen)의 희곡을 원어로 읽었을 정도였고 단테와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미학이론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들은 소설에서 주인공을 통해 그대로 투영된다..

한국의 대학에도 교양학부, 인문학부, 문과대학이라는 것이 있다. the faculty of liberal arts, the college of liberal arts, the liberal arts school등이 그것이다. ‘arts’에 교양과목, 인문학이란 뜻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문과계와 이과계를 총칭할 때 ‘arts and sciences’라고 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3개 단과대학의 전신인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도 영어로 ‘The College of Liberal Arts & Sciences’로 불렀다.

영어로 문과계열 학생을 an arts student, 인문학 학위를 an arts degree, 문학사(학위소지자)를 a bachelor of arts, 문학석사를 a master of arts, 문학박사를 a Ph.D. of arts 라고 하는 것을 봐도 ‘arts’는 예술, 미술이라는 의미 외에 문학, 인문학의 의미가 있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BC 370)가 말한 것으로 전해지는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is long.)는 대표적인 오역 사례다.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은 라틴어로 “Ars longa, vita brevis”.

라틴어의 ‘ars’는 학술, 기술, 예술의 의미인데 여기에서 파생한 영어의 art도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사였다. 그가 의미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 특히 그의 직업인 의술을 가리킨 말이었다. 사람의 일생은 짧은 데 의술의 깊이는 한이 없어 습득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오랜 시일이 걸리는 가를 말하기위한 것이었다, 평생 동안 배워도 다 못 배우는 것이 의술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의술(art of healing)이란 뜻으로 썼는데 지금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란 뜻으로 인용되고 있다.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따르다 보니 ‘예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이 단어를 예술로 알고 있는 곳은 한국과 일본 등 일부 아시아 국가라는 것이다. 영어로 된 전체 문장을 봐도 ‘art’가 예술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Life is short, (the) art long, opportunity fleeting, experiment uncertain, experience misleading, judgment difficult. The physician must not only be prepared to do what is right himself, but also to make the patient, the attendants, and externals cooperate.”(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익히는데 오래 걸린다). 기회는 덧없이 흘러가고, 실험결과는 불확실하며, 경험은 오도하며, 진단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만을 준비해서는 안 되며 환자, 조수,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

옥스퍼드영어사전(The Oxford English Dictionary)은 ‘artist’의 정의(definition)에 ‘학식있는 사람’(learned person)이나 문학석사(Master of Arts)뿐 아니라 의술(medicine), 점성술(astrology), 연금술(alchemy), 화학(chemistry) 같은 실용과학(practical science)을 추구하는 사람을 포함시키고 있다. 또한 프린스턴 에듀(Pri nceton.edu)는 ‘artist’를 ‘창의적인 사람’(creative person)으로 정의하고 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을 최근에 펴낸 졸저 <오역의 제국-그 거짓과 왜곡의 세계>(도서출판 도리, 4.6배판 643쪽, 2013)에 담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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